蚩尤의 또 다른 세계..Ver.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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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여행 중에 담은 사진을 모아 놓은 갤러리입니다..^^


도원결의(桃園結義)..
No.1
NIKON CORPORATION | NIKON D2X | 2007-06-19 13:15:21
Program Normal | Multi-Segment | Auto WB | 1/160s | F6.0 | 0.00 EV | ISO-400 | 48.00mm | 35mm equiv 72mm | Not Fired





유비(劉備), 관우(關羽), 장비(張飛)가 도원(桃園)에서 의형제를 맺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말로, 뜻이 맞은 사람끼리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행동을 같이 할 것을 약속한다는 뜻이다. 중국 원(元)과 명(明)의 교체기 때의 사람인 나관중(羅貫中, 1330?~1400)이 지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비롯되었다.

《삼국지연의》는 진수(陳壽, 233~297)의 《삼국지(三國志)》에 서술된 위(魏)·촉(蜀)·오(吳) 3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전승되어 온 이야기들을 나관중이 이야기체의 장편 소설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는 후한(後漢) 황실의 혈통을 계승했다는 유비를 중심으로 삼국의 분립(分立)과 대립의 역사를 서술하였는데, 그래서 유비가 관우, 장비와 함께 도원(桃園)에서 결의(結義)하여 의형제(義兄弟)를 맺은 내용으로 이야기의 첫머리로 삼고 있다. 이는 진수(陳壽)의 《삼국지》에는 나타나지 않은 사실로 이야기의 전승 과정에서 허구(虛構)로 재구성된 것이다. 나관중이 도원결의(桃園結義)를 이야기의 첫머리로 삼은 것은 국가와 민족의 정통(正統) 회복이라는 대의(大義)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에는 청(淸) 초기에 모종강(毛宗崗)이 다듬은 ‘모본(毛本)’이 《삼국지연의》의 정본(定本)으로 여겨지는데, 이를 기초로 도원결의(桃園結義)와 관련된 이야기를 간추려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후한(後漢) 말 환관의 발호로 정치가 어지럽자 천하 인심이 날로 흉흉해지고 사방에서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장각(張角)이 남화노선(南華老仙)에게 세 권의 천서를 얻어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면서 스스로를 대현량사(大賢良師)라 했다. 장각이 두 동생과 함께 난을 일으키니 사방의 백성들이 모두 누런 헝겊으로 머리를 싸매고 장각을 따라서 일어났다. 장각의 군대가 유주(幽州) 땅까지 범해 들어오자 유주(幽州) 태수(太守) 유언(劉焉)은 교위(校尉) 추정(雛靖)의 말을 들어 의병을 모집하는 방문(榜文)을 내 걸었다. 이 방문이 탁현(涿縣)으로 들어가 마침내 그 고을의 한 영웅을 끌어내게 되었다.
  
한(漢) 경제(景帝)의 후손인 유비(劉備)는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모친을 지성으로 섬겼는데 집이 가난해서 미투리를 삼고 자리를 치는 것으로 생계를 삼았다. 유언이 방(枋)을 내어 군사를 모집할 때 유비의 나이는 이미 스물여덟이었다. 이 날 유비가 방문(榜文)을 보고 탄식을 하고 있는데 장비(張飛)가 나타나 대장부가 나라를 위해서 힘을 내려고 하지 않고 어째서 한숨만 쉬고 있느냐고 꾸짖었다. 유비가 도적을 무찔러 백성을 편안히 할 생각은 간절하나 힘이 없어서 장탄식을 한다고 하자, 장비는 자신의 재산을 팔아 고을 안의 용사들을 모아 함께 큰 일을 하자고 했다. 유비가 크게 기뻐하며 장비와 함께 마을 주막에 가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관우가 주막으로 들어와 군사 모집에 응해 성으로 들어가는 길이라며 술을 독촉했다. 유비가 자리로 불러 마음에 있는 바를 이야기했더니 관우도 크게 기뻐했고, 세 사람은 함께 장비의 집으로 갔다.

큰 일을 의논하는 자리에서 장비가 집 뒤의 복숭아 동산에 꽃이 한창이니 내일 이 동산에서 천지(天地)에 제(祭)를 지내고 셋이 의형제를 맺어 한마음으로 협력하기로 한 뒤에 일을 도모하자고 하였다. 유비와 관우가 동의하여 다음날 도원(桃園)에 검은 소(黑牛)와 흰 말(白馬)과 지전(紙錢) 등 제물을 차려 놓고 제를 지내며 맹세했다. “유비, 관우, 장비가 비록 성은 다르오나 이미 의를 맺어 형제가 되었으니, 마음과 힘을 합해 곤란한 사람들을 도와 위로는 나라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편안케 하려 하고, 한 해 한 달 한 날에 태어나지 못했어도 한 해 한 달 한 날에 죽기를 원하니, 하늘과 땅의 신령(皇天后土)께서는 굽어 살펴 의리를 저버리고 은혜를 잊는 자가 있다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죽이소서” 맹세를 마치고 유비가 형이 되고, 관우가 둘째, 장비가 셋째가 되었다. 제(祭)를 마치고 소를 잡고 술을 내어 고을 안의 용사들을 불러모으니 300명이었다. 이 날 도원(桃園)에서 다들 취하도록 술을 마시며 함께 즐겼다.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桃園)에서 결의(決議)를 한 이 이야기에서 도원결의(桃園結義)는 의형제(義兄弟)를 맺거나 뜻이 맞는 사람들이 사욕을 버리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합심할 것을 결의하는 일을 나타내는 말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전승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삼국지연의》의 영향 때문에 제문(祭文)의 내용이 중국인들 사이에서 서약(誓約)의 모범으로 널리 쓰이기도 했다.
    
제목: 도원결의(桃園結義)..

무후사(武侯祠)


사진가: 치우 * http://www.chiwoo.pe.kr

등록일: 2008-03-23 23:07
조회수: 3709


DSC_1399.jpg (1.23 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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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일 : 2003-12-01 ]